자연은 인간의 것이다 - 생태중심주의의 위선
학교에서 우리는 배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며, 자연은 인간과 무관하게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생태중심주의의 핵심 명제다. 듣기엔 숭고하다. 그러나 이 철학이 현실과 부딪히는 순간, 숭고함은 산산조각 난다. 자원을 이윤으로 바꾸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관리자"라고 말하는 것, 그게 우리 시대의 위선이다.
생태중심주의는 자연 생태계에 인간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오늘도 수억 명이 빈곤과 기아로 죽어간다. 자연의 고유 가치를 외치기 전에 인간의 고유 가치부터 물어야 한다. 아프리카 농부가 땅을 개간해 가족을 먹이는 행위를 "생태계 파괴"라는 이름으로 막을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생태중심주의는 입을 닫는다. 생태중심주의를 가장 열렬히 외치는 이들의 일상엔 노골적인 아이러니가 있다. 기후 위기 강연자는 전용기로 세계를 누비고, 환경 보호를 설파하는 기업은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친환경 제품"을 판다. 학교에서 자연의 가치를 가르치면서, 그 학교를 짓기 위해 숲을 밀어버린다. 자연을 신성시하면서 전기, 종이, 식량, 연료는 당연히 쓴다. 개인의 도덕적 실패가 아니다. 생태중심주의 철학 자체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구조적 증거다.
인간은 자연 없이 살 수 없다. 숨을 쉬고, 물을 마시고, 땅에서 나는 것을 먹는다. 자연을 쓰는 것은 인간 존재의 조건이다. 생태중심주의는 이 불가피한 사용을 죄악으로 만들고, 아무도 지킬 수 없는 윤리를 세워놓는다. 지킬 수 없는 윤리는 장식에 불과하다. 학교 교육은 인간을 자연의 "관리자"라 가르친다. 그런데 구조 변화 없이 개인에게 "친환경 소비"를 요구하는 것은 도둑이 스스로를 집지기라 부르는 것과 같다.
생태중심주의는 자본주의라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도덕 문제로 바꿔치기한다. 시스템은 그대로 돌아가고, 죄책감만 개인 몫으로 남는다. 인간중심주의는 자연 착취의 원흉으로 자주 낙인찍힌다. 그 낙인은 틀렸다. 인간을 중심에 두는 것은 후손이 마실 물, 아이들이 살아갈 생태계를 지킨다는 뜻이다. 동기는 인간의 이익이고, 결과는 생태계 보전이다. 강화된 인간중심주의가 생태중심주의보다 강한 실천력을 갖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자신의 것이라고 느낄 때 사람은 책임진다. 세입자보다 집주인이 더 아끼고 관리하듯, 자연도 마찬가지다. 환경을 "나와 무관한 신성한 타자"로 여기면 경외심은 남지만 책임은 사라진다. "이 땅은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이라는 주인의식이 구체적인 행동을 만든다. 그 주인의식이 인간을 환경의 당사자이자 책임 주체로 세운다.
자연을 신성시하는 언어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환경 파괴의 구조적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 인간 스스로 책임 있는 주인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철학이 필요하다. 생태중심주의의 숭고한 언어 뒤에 숨은 위선을 걷어내야 한다. 인간의 이름으로, 인간의 미래를 위해 환경을 지킬 때 진짜 환경윤리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