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jin Kim

유교와 다문화 - 국어 수행평가 비평글

초고

제목: 유교와 다문화

<가리는 손>에서 재이는 차별을 하는 가해자이자 차별을 당하는 피해자인 다문화 가정의 아이이다. 이 이야기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각 집단 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차별들 중에서 요즘 들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나는 다문화 차별을 다뤄보고자 한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언제까지 유교 탓인가>(한겨레) 매체를 인용하여 유교를 통해서 다문화 차별의 해결방안과 유교가 어떻게 다문화 차별을 낳았는지에 대하여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한다.

매체에서는 지금까지 유교가 기득권 세력에 의해서 이용당하여 여러 차별등이 합리화하는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신뢰성 있는 기관에서 나온 사설임에도 불구하고, 신뢰성을 재확인하고자 하였다. 역사를 살펴보니, 유교에서 제시하는 성 역할 제시나 나이나 국가적 직책에 따른 높고 낮음의 인정은 이를 당연히 합리화하는데 쉽고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또한 중국의 역사를 조사하며 중국에 유교가 널리 퍼졌을 때 “단일화” 유교 논리로 인해서 타 문화적 존재는 포용이나 다름의 인정의 대상이 아닌 “동화”의 대상으로 다문화 사람들이 원치 않는 폭력과 차별 섞인 시선을 오래전부터 받아왔음을 알게되었다. 이러한 사상과 행동 방식이 현대에서는 없었길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이러한 것이 더욱더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다문화와 유교의 역사와 더불어 현대 사회를 돌아보며 들었다.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단일 문화/단일 민족 정체성이 매우 강하다. 이는 주변국의 빈번한 침략과 독자적 언어를 통한 문화의 강세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여러 공익 캠페인에서 애국과 관련된(독도는 우리땅, 3.1절 기념행사, 광복절 행사, 제헌절, 개천절 등) 용어가 사용될 때에는 철저하게 단일 민족을 강조하고 우리의 특수성을 장점으로서 과도하게 과시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경험상 어린 시절부터 이루어지는 단일 민족 중심의 교육 활동들은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오히려 자기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재이가 교회에서 친구들에게 특별하다는 말을 들었던 것처럼 자기자신을 향하는 고정관념과 편견은 자신이 원치 않는 공동체의 배타성을 느끼게 만들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의 닫힌 세계관을 탈피해야한다. 오륜 등의 사상으로 우리나라의 사람을 배척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재이가 당했고, 행동했던 것처럼 서서히 분열하게 될 것이다.

유교는 죄가 없다. 통치 논리적인 구시대적 유교 사상을 배제하고 근본적인 유교의 인과 예를 생각하게 된다면 다문화 역시 평등한 인간으로서 인과 예의 대상이다. 한국인을 단일 민족이라는 특성에서 탈피하고 한반도에 사는 사람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다민족 사회로 나아가며 모두가 모두를 향해 인과 예를 실천하게 된다면 우리는 차별이 없는 사회로 많은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개인이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해 노력할 때 우리는 인과 예를 어려운 개념이 아닌 작고 간단한 사랑과 존중으로 시작해야 한다. 매체에서 말했듯이 유교는 쉽고 편리하게 악용되어 왔다. 이제는 쉽고 편리하게, 재이와 같은 아이들이 없어지도록 활용해야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국가의 정책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현행되고 있는 복지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비평글 쓰기를 위해서 자료 조사를 해보며 알게된 현재의 과도한 복지는 다문화 가정들이 이러한 지원 정책에 과도하게 의지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하는 글들(칼럼과 뉴스)이 많았다. 이들이 필요한 것은 단편적, 주고 끝나는 “지원”이 아닌 남들과 똑같은 선에서 출발하고 도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동화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고 생각하며 주장해야 하는 것은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적절한 공존이다. 이를 위해 실제 정책을 다른 국가에서 착안해보자면 해당 국가의 공용어를 무료로 알려주는 공익 수업, 다양한 기관에게 주어지는 기회, 그리고 지속적인 피드백과 공존 노력이다.

유교는 다문화를 강하게 억압해왔다. 완전한 이방인, 힘 없는 약자, 그리고 차별의 대상.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구시대적 유교 통치 이론은 버려야 한다. 이제는 유교로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실질적으로 발돋음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유교 논리로 모든 사람을 사랑과 존중으로 품으며 국가와 기업에게 다문화에게 막무가내 지원이 아닌 기회를 주라고 요구해야 한다. 유교는 분명 잘못이 있다. 유교를 탓하자. 하지만 언제까지 유교 탓인가. 이제는 유교로 우리가 직접 행동에 나서고 국가에 요구해야 할 것이다.

AI Feedback

<가리는 손>의 재이의 상황에서 출발하여 ‘유교 사상’과 ‘다문화 차별’이라는 깊이 있는 사회적 의제로 연결한 시야가 매우 돋보입니다. 매체 자료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역사적 배경까지 스스로 탐구해 논리를 전개한 점도 훌륭합니다. 남은 15분 동안 글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 아래의 조언을 바탕으로 글을 다듬어 보세요.

① 서론-본론-결론의 통일성과 논리적 전개

생각해 볼 점: 서론부터 본론 중반까지는 '유교의 배타성'과 '단일 민족 정체성'을 다문화 차별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유교의 본질인 인(仁)과 예(禮)'를 제시하며 논리가 일관되게 흘러갑니다. 그런데 본론 후반부에 이르러 갑자기 '현행 다문화 복지 정책 폐지'와 '기회 제공'이라는 제도적 차원의 주장이 등장합니다. 사상과 인식의 문제를 다루던 글이 갑자기 복지 제도의 문제로 넘어가면서 글의 논리적 초점이 흩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고쳐 쓰기 팁: 글의 핵심 주제인 '유교 사상의 올바른 적용(인과 예)'과 후반부의 '복지 정책 비판'이 서로 어떤 논리적 연결 고리를 맺고 있는지 곰곰이 점검해 보세요. 만약 이 둘을 자연스럽게 잇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본인이 원래 말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주제(유교적 편견 탈피와 인식 개선)에 집중하여 내용을 덜어내거나 흐름을 매끄럽게 가다듬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② 소설의 맥락과 해결책의 유기적 연결

생각해 볼 점: 서론과 본론에서 재이가 교회에서 겪은 시선 등 소설의 요소를 적절히 끌어온 점이 좋습니다. 다만 결론에서 도출한 궁극적인 해결책(막무가내 지원이 아닌 동등한 기회 부여)이, 과연 소설 속 재이가 겪어야 했던 내면의 상처나 사건 현장에서 보인 방관적 태도(가리는 손)를 온전히 설명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대안인지 스스로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쳐 쓰기 팁: 소설 속 재이가 정말로 원했던 것이 '제도적인 기회'였는지, 아니면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어떤 시선의 변화'였는지 본문을 통해 다시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본인이 도출한 해결책이 재이와 같은 아이들의 구체적인 아픔을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결론을 다듬어 본다면, 소설과 사회적 의제가 훨씬 더 끈끈하게 맞닿은 비평문이 될 것입니다.

최종본

제목: 유교와 다문화

<가리는 손>에서 재이는 차별을 하는 가해자이자 차별을 당하는 피해자인 다문화 가정의 아이이다. 이 이야기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각 집단 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차별들 중에서 요즘 들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나는 다문화 차별을 다뤄보고자 한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언제까지 유교 탓인가>(한겨레) 매체를 인용하여 유교를 통해서 다문화 차별의 해결방안과 유교가 어떻게 다문화 차별을 낳았는지에 대하여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한다.

매체에서는 지금까지 유교가 기득권 세력에 의해서 이용당하여 여러 차별등이 합리화하는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신뢰성 있는 기관에서 나온 사설임에도 불구하고, 신뢰성을 재확인하고자 하였다. 역사를 살펴보니, 유교에서 제시하는 성 역할 제시나 나이나 국가적 직책에 따른 높고 낮음의 인정은 이를 당연히 합리화하는데 쉽고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또한 중국의 역사를 조사하며 중국에 유교가 널리 퍼졌을 때 “단일화” 유교 논리로 인해서 타 문화적 존재는 포용이나 다름의 인정의 대상이 아닌 “동화”의 대상으로 다문화 사람들이 원치 않는 폭력과 차별 섞인 시선을 오래전부터 받아왔음을 알게되었다. 이러한 사상과 행동 방식이 현대에서는 없었길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이러한 것이 더욱더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다문화와 유교의 역사와 더불어 현대 사회를 돌아보며 들었다.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단일 문화/단일 민족 정체성이 매우 강하다. 이는 주변국의 빈번한 침략과 독자적 언어를 통한 문화의 강세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여러 공익 캠페인에서 애국과 관련된(독도는 우리땅, 3.1절 기념행사, 광복절 행사, 제헌절, 개천절 등) 용어가 사용될 때에는 철저하게 단일 민족을 강조하고 우리의 특수성을 장점으로서 과도하게 과시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경험상 어린 시절부터 이루어지는 단일 민족 중심의 교육 활동들은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오히려 자기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재이가 교회에서 친구들에게 특별하다는 말을 들었던 것처럼 자기자신을 향하는 고정관념과 편견은 자신이 원치 않는 공동체의 배타성을 느끼게 만들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의 닫힌 세계관을 탈피해야한다. 오륜 등의 사상으로 우리나라의 사람을 배척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재이가 당했고, 행동했던 것처럼 서서히 분열하게 될 것이다.

유교는 죄가 없다. 통치 논리적인 구시대적 유교 사상을 배제하고 근본적인 유교의 인과 예를 생각하게 된다면 다문화 역시 평등한 인간으로서 인과 예의 대상이다. 한국인을 단일 민족이라는 특성에서 탈피하고 한반도에 사는 사람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다민족 사회로 나아가며 모두가 모두를 향해 인과 예를 실천하게 된다면 우리는 차별이 없는 사회로 많은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개인이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해 노력할 때 우리는 인과 예를 어려운 개념이 아닌 작고 간단한 사랑과 존중으로 시작해야 한다. 매체에서 말했듯이 유교는 쉽고 편리하게 악용되어 왔다. 이제는 쉽고 편리하게 재이가 받는 차별이 없어지도록 활용해야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군군신신부부자자라는 유교 논리는 과거부터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 이용되어 왔다. 이것을 새롭게 변형하여 사회 구성원 각자에게 알맞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고 싶다. 그러한 측면에서 국가의 정책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현행되고 있는 복지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비평글 쓰기를 위해서 자료 조사를 하며 알게된 현재의 과도한 복지는 다문화 가정들이 이러한 지원 정책에 과도하게 의지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하는 글들(칼럼과 뉴스)이 많았다. 이렇게 된다면 유교적 이상사회를 실현하기는 커녕 국가에 의지하게 되는 무지의 시민들만 많아질 것이다. 이들이 필요한 것은 주고 끝나는 “지원”이 아닌 남들과 똑같은 선에서 출발하고 도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동화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고 생각하며 주장해야 하는 것은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적절한 공존이다. 이를 위해 실제 정책을 다른 국가에서 착안해보자면 해당 국가의 공용어를 무료로 알려주는 공익 수업, 다양한 기관에게 주어지는 기회, 그리고 지속적인 피드백과 공존 노력이다.

개인의 노력 또한 국가의 영향 못지 않게 중요하다. 군군신신부부자자가 왜곡되어 해석된 논리 말고 본질적인 유교의 평등론적 세계관에서는 모든 사람이 본질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관을 통해서 생각해보자면 우리는 다문화 가정을 기존의 문화적 관점에서는 다름을 인정하고 사회적 일원으로 수용해고 우리가 그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의 문화적 특성으로 그들 자체의 높고 낮음을 따져서 대우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나’ 주변의 또 하나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 따라 있는 그대로 대우해줘야 한다. 재이를 제도적인 차원에서 보호하고 기회를 부여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개인적으로 지지하고 하나의 친구로 대우하는 것이다. 우리는 재이를 사랑해야 한다. “나는 국가가 다문화를 존중하는 정책을 만들라고 요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위선 부리는 것보다 재이가 가장 필요하였을 것은 인간적인 지지와 사랑, 그리고 존중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교는 다문화를 강하게 억압해왔다. 완전한 이방인, 힘 없는 약자, 그리고 차별의 대상.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구시대적 유교 통치 이론은 버려야 한다. 이제는 유교로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실질적으로 발돋음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유교 논리로 모든 사람을 사랑과 존중으로 품으며 국가와 기업에게 다문화에게 막무가내 지원이 아닌 기회를 주라고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유교 논리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사랑하고 존중하며 행동하는 유교를 실천하며 보이지 않은 은밀한 차별을 없애나가야 한다. 유교는 분명 잘못이 있다. 유교를 탓하자. 하지만 언제까지 유교 탓인가. 이제는 유교로 국가에 요구함과 동시에, 일상에서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SGHS #essay #sch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