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글쓰기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1833년 공장법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서술하세요.
영국의 1833년의 공장법은 혁신적입니다. 일반적으로만 보면 긍정적인 부분만 보입니다. 하지만 이 공장법 내에서 인권을 보장해 주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는 공장법에 적용이 되지 않는 사람이나 공장들이 알고 보면 꽤나 많았습니다. 우선 1833년의 공장법은 아동의 인권에 중점을 두고 법을 개정하여 시행하였습니다. 그럼으로 사회적 약자 중 하나로 해당되는 임산부와 같은 여성들 공장법에 의해서 보호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인 법 집행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였습니다. 저는 관련 자료조사를 하면서 공장법이 어느정도 보여주기식의 정책이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인프라가 심각하게 부족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로써 공장법 준수를 확인하기 위한 감독관이라는 존재가 인원이 매우 제한적이였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단 4명일 정도로, 많은 공장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에는 어려운 인원이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독관들은 강제성이 높지 않아서 일부 공장주들이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서 서류를 위조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르며 일상적으로 공장법의 규정을 지키지 않은 예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소규모 공장들에게는 이 “공장법”이 적용되지 않아 크기를 불려 나가는 과정에 있던 소규모 공장들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생각하기에 이 “공장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교육 시행의 측면에서도 감독관과 마찬가지로 교육 시설을 비롯한 교사들이 부족하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공장법은 아동 인권적인 측면에서 힘쓰고 노력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법 망의 허점이 많고 실질적인 법 집행과 관리를 위한 인프라가 부족했던, 혁신적이지만 문제점이 많은 아쉬운 법이였던 것 같습니다.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는 1907년, 『이태리건국삼걸전』이라는 번역서를 출판하면서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루어낸 주역들(마치니, 카보우르, 가리발디)을 애국자로 소개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당시 한국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영웅, 애국자의 출현을 기대하는 염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마치니, 카보우르, 가리발디의 어떤 면모가 신채호에게 울림을 주었을지 생각해보고 자신의 의견을 서술해보세요. (최소 공백 포함 500자)
1905, 우리 나라는 을사늑약을 일본과 사실상 강제적으로 맺어 외교권을 박탈 당하고 실질적인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 청나라와 일본, 그리고 러시아를 비롯한 다양한 국외 세력들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려고 시도하였고,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혼란 속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태리건국삼걸전>을 쓴 신채호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우리 나라 고유의 역사를 되새기고, 상기시키는 책들을 지필했다고 합니다. 또한 신채호 선생님은 독립운동가로써 일제강점기 시기, 우리나라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애국적인 행위를 하신 분입니다. 신채호 선생님이 활동하시던 1907, <이태리건국삼걸전>을 쓴 1907이라는 년도에 우리 나라는 군대의 해산 또한 이루어지던 한마디로 나라가 패망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결을 외치기도 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친일을 택하기도 하였으며, 어떤 사람들은 국외로 나갔고, 또 어떤이들은 정치적인 이념을 통해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처럼 국외의 세력에 우리나라는 분열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채호가 <이태리건국삼걸전>을 읽으며, 차차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통일하여 애국적으로 나라에 헌신하는 마치니와 가리발디, 그리고 카보우르를 보며 이탈리아에서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우리 민족을, 우리나라를 하나로 모아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마치니와 가리발디는 애국 정신으로만 이탈리아 통일을 위해서 헌신하였고, 카보우르는 이탈리아의 통일이라는 꿈을 가지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사회를 고치고 개혁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분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세 인물과 같은 사람이 등장한다면 우리나라는 다시 단결하는 한민족이 되리라 신채호 선생님은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애국적인 세 사람의 면모에 울림을 받았던 것과 같이 분열하는 우리 민족에 있어서 신채호 선생님도 “애국”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되는 세 사람에게 큰 울림을 받지 않았나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