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jin Kim

대기업과 재래시장, 공존에서 공생으로

제주 동문시장을 직접 둘러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시장이 아직 충분히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전통시장이라고 하면 낡고 불편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동문시장은 그런 말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시장 안에는 제주산 수산물과 향토 음식이 있고 오랫동안 장사해 온 상인들의 말투와 손길이 남아 있다. 관광객들이 그냥 물건만 사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고 둘러보고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보였다. 이곳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제주라는 지역의 분위기를 직접 느끼게 하는 장소였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아쉬움도 더 크게 느껴졌다. 동문시장의 상품과 분위기는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매력이 지금의 소비 방식과 충분히 이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요즘 소비자는 시장에 직접 가서 물건을 사는 것만 기대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주문할 수 있는지 결제가 편한지 포장이 믿을 만한지 배송이 안정적인지를 함께 본다. 특히 제주 수산물이나 특산품처럼 지역성이 강한 상품은 시장 밖 소비자에게도 충분히 팔릴 수 있다. 문제는 상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좋은 상품을 더 넓은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약한 것이다.

이 점에서 나는 전통시장을 단순히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생각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전통시장을 지키자는 말은 맞다. 하지만 지킨다는 말이 지금 모습 그대로 두자는 뜻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장이 계속 살아남으려면 소비자가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환경 정비나 행사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간판을 정리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온라인 소비와 대형 유통망에 익숙해진 소비자를 다시 시장으로 끌어오기는 어렵다. 동문시장에 필요한 것은 보존이 아니라 재설계다.

여기서 대기업이나 전문 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통시장과 대기업을 무조건 경쟁 관계로만 보는 시각은 현실을 너무 단순하게 만든다. 전통시장은 지역성과 현장성과 독특한 상품을 갖고 있다. 반면 대기업은 유통망과 브랜딩과 물류 시스템을 갖고 있다. 서로 가진 것이 다르다. 그렇다면 한쪽이 다른 쪽을 밀어내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관계도 가능하다. 동문시장의 현실적 해법은 대기업과의 단절이 아니라 조건을 갖춘 협력에 있다.

예산시장의 사례는 이 점을 보여준다. 예산군과 더본코리아는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창업 점포를 리모델링하고 메뉴 개발과 상인 교육을 진행했다. 내가 이 사례에서 중요하게 본 부분은 외부 기업이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더본코리아가 새 점포만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 시장 점포에도 메뉴 개발과 레시피 컨설팅을 지원했다는 점이다. 대기업의 개입이 반드시 기존 상인을 밀어내는 방식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시장 내부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도 가능하다.

관련 보도를 보면 예산시장 활성화 이후 시장 방문객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예당호 출렁다리와 수덕사 같은 주변 관광지 방문도 함께 늘었다. 시장 하나가 살아나면 그 주변 동선까지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직접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예산시장 관련자는 더본코리아의 개입 이후 재래시장 이용객이 확연하게 늘었다고 말했다. 단순히 외형만 바뀐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목적지를 정해 시장을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이 변화가 메뉴 개발과 공간 기획과 홍보가 함께 작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물론 예산시장 사례를 동문시장에 그대로 옮겨서는 안 된다. 두 시장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산시장은 침체된 시장을 새롭게 목적지로 만든 사례에 가깝다. 반면 동문시장은 이미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형 전통시장이다. 동문시장에 필요한 것은 인지도를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이미 있는 인지도와 상품성을 더 넓은 유통망과 안정적인 서비스로 연결하는 일이다. 예산시장에서 가져올 것은 방식의 복제가 아니라 원리다. 외부 기업의 기획력과 운영 시스템을 활용하되 동문시장 상인의 상품성과 제주라는 지역성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동문시장 상품을 대기업 유통 채널에 상설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갈치와 옥돔과 고등어와 젓갈과 오메기떡과 감귤 가공품을 묶어 동문시장 제주 꾸러미처럼 판매할 수 있다. 백화점 식품관이나 대형마트 로컬 코너 또는 온라인몰에서 이런 상품을 꾸준히 판매한다면 소비자는 더 편하게 동문시장 상품을 접할 수 있고 상인은 시장 안 방문객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시장 상품의 가치를 낮추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상품이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넓히는 일이다.

다만 단순 납품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대기업 이름만 앞에 나오고 동문시장 상인의 이름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협력이 아니라 흡수에 가깝다. 상품에는 상인의 이름과 점포 위치와 생산 방식과 추천 조리법이 함께 담겨야 한다. 포장에 QR 코드를 넣어 점포 이야기와 시장 안 위치를 연결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온라인으로 상품을 산 사람이 나중에 제주를 방문했을 때 실제 동문시장 점포를 찾아가게 만드는 흐름이 필요하다. 그래야 유통망 확대가 시장의 개성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시장의 이야기를 더 넓게 전달하는 일이 된다.

물류와 온라인 판매도 반드시 손봐야 한다. 동문시장 개별 점포가 포장과 배송과 고객 응대를 모두 맡는 방식은 오래가기 어렵다. 특히 수산물은 신선도가 중요하다. 포장 방식이나 배송 시간이 조금만 흔들려도 소비자 신뢰가 바로 떨어진다. 시장 안이나 가까운 곳에 공동 집하 공간을 두고 오전에는 상인이 상품을 맡기고 오후에는 전문 인력이 검수와 냉장 포장과 송장 출력과 배송 인계를 처리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온라인 주문도 점포별로 흩어놓기보다 동문시장 통합 주문 페이지에서 받는 편이 낫다. 상인은 좋은 상품을 준비하고 플랫폼은 결제와 배송 추적과 고객 응대를 맡아야 한다.

관광과의 연결도 중요하다. 동문시장은 이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시장이지만 방문이 한 번의 식사나 짧은 구경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 흐름을 더 길게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동문시장 저녁 코스를 만들 수 있다. 야시장 음식과 수산물 포장 구매와 주변 산책 동선과 근처 카페나 숙소 할인 혜택을 한 코스로 묶는 방식이다. 시장 입구에는 인기 품목과 혼잡도를 보여주는 안내판을 두고 온라인 지도에는 추천 점포와 이동 경로를 표시할 수 있다. 시장 안에서 한 번 먹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소비로 이어지고 다시 시장 재방문으로 돌아오는 흐름이 필요하다.

이런 계획을 실제로 추진하려면 처음부터 크게 벌릴 필요는 없다. 먼저 참여를 원하는 점포를 모집하고 품질 관리가 가능한 대표 상품을 10개 정도 고르면 된다. 제주도와 시장 상인회와 협력 기업이 운영 협의체를 만들고 포장 기준과 가격 결정 방식과 수익 배분 기준을 정해야 한다. 그다음 3개월 정도 시범 판매를 해보면 된다. 주문량과 배송 사고와 소비자 후기와 상인 만족도를 확인하고 결과가 좋으면 참여 점포와 상품군을 늘리면 된다. 정책은 말이 아니라 운영 방식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대기업과의 협력에는 분명 위험도 있다. 나 역시 대기업이 참여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통시장의 정체성이 약해질 수도 있고 임대료가 오를 수도 있다. 시장의 주인이 기존 상인이 아니라 외부 기업처럼 보이는 순간 전통시장의 매력은 크게 줄어든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개방이 아니라 통제된 협력이다. 협력 기업이 시장 안 점포를 직접 대량 임차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기존 상인 상품을 우선 판매하도록 해야 한다. 판매 페이지와 포장에는 기업명보다 시장명과 점포명을 앞세워야 한다. 수수료율과 광고비 부담도 미리 공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대기업이 들어오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규칙으로 들어오느냐다.

나는 동문시장이 사라져 가는 과거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연결되기만 한다면 앞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라고 본다. 동문시장에는 대형 유통업체가 쉽게 만들 수 없는 현장감이 있고 제주라는 지역성이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비자가 시장 밖에서도 동문시장 상품을 접하고 시장에 왔을 때 더 오래 머물고 다시 찾게 만드는 방식이 필요하다. 전통시장은 과거의 향수를 파는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현재의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생활 문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결국 동문시장의 미래는 공생 구조를 얼마나 주체적으로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기업과의 협력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시장의 중심을 외부 기업에 넘겨서는 안 된다. 전통시장은 지역성과 현장성을 제공하고 기업은 유통과 기획과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 이 균형이 맞을 때 동문시장은 보호받는 시장을 넘어 스스로 성장하는 시장이 될 수 있다. 실제 적용 과정에서 조정은 필요하겠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동문시장은 공존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공생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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